여행이란 퍽 쓸모 있는 것으로, 그로서 우리는 상상력을 훈련시킬 수 있다. 그 외에는 죄다 환멸과 피로일 뿐. 우리 자신으로의 여행은 전적으로 상상에 달렸으니, 이제 그 힘을 보라.

삶에서 죽음으로의 이행. 인간들, 짐승들, 마을과 사물들, 모두 상상의 산물이다. 말하자면 한 편의 소설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이야기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리트레가 말한 바, 이를 착각할 여지는 결코 없다.

그리고 우선 우리는 얼마든지 여행을 할 수 있다. 그저 두 눈을 감기만 하면 된다. 그곳에 삶의 이면이 있으니.



Posted by Sacha

20190119

떠들기 2019.01.20 08:57

3월부터는 다른 집에 살기로 결정했고, 오늘 파올라에게 말했다. 한평생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을 것도 아니고 지금 살고 있는 산텔모는 충분히 경험하였고, 조금 더 다른 동네를 알고 싶다는 생각, 좀 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내린 결정이다.

2월까지 지금 하고 있는 번역을 끝냈으면 하는데, 나름 꾸준히 하는데 속도가 더뎌서 잘못하면 3월까지 끌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 또 다른 책들이 걸리고... 최대한 빨리 번역을 끝마치고 스페인어에만 집중하고 싶다.

Posted by Sacha

타자



     사건은 1969년 2월, 캠브리지의 보스톤 북부에서 발생했다. 내가 이에 대해 곧장 쓰지 않았던 것은, 우선 미치지 않으려면 그 일을 잊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1972년인 지금 그 일에 대해 쓸 경우, 다른 사람들은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양 할 것이고, 나 또한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은 물론이오 그후 지샌 불면의 밤들은 거의 끔찍하다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삼자에게도 충격적인 이야기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는 아마도 오전 10시 였다. 나는 벤치에 몸을 기대고 앉아 찰스 강을 향해 있었다. 오른쪽으로 500여 미터 멀리 커다란 건물이 한 채 있었는데, 그 건물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단 한 번도 안 적이 없다. 회색빛 물이 널찍한 얼음 파편들을 실어 날랐는데, 그런 강을 두고 나로서는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천의 영상. 나는 전날 숙면을 취한 상태였고, 오후 수업에서도 성공적으로 제자들의 흥미를 이끌었던 것 같다. 어떤 영혼도 눈에 띄지 않았다.

     돌연 어떤 느낌이 들었는데,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이는 피로한 상태에 부합한다고 한다) 바로 내가 이미 이 순간을 겪었다는 인상이었다.

     벤치의 다른 쪽 끝에는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나 혼자였으면 좋았을 테지만, 교양 없어 보이게 곧장 일어날 마음은 없었다. 그 타인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바로 그때가 그날 아침에 있던 수많은 불안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가 휘파람을 부르던, 아니 그가 휘파람으로 부르려던 것은 (나는 제대로 음을 맞추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에스틸로/우루과이 민속음악/였는데, 바로 엘리아스 레굴레스의 라 타페라La tapera였다. 그 음악은 나를 이미 사라진 어느 한 건물의 안뜰로, 이미 수 년 전 죽은 알바로 멜리안 라피누르에 대한 기억으로 이끌었다. 이윽고 가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노래의 첫 소절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는 알바로의 것이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알바로의 목소리와 닮은 듯 싶었다. 나는 겁에 질려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를 알아보았다.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선생, 선생은 우루과이 사람입니까 아르헨티나 사람입니까?”

     “아르헨티나 사람입니다. 하지만 14살부터 제네바에서 살았지요.” --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긴 침묵이 흘렀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말라그누 17번지지요, 러시아 교회 앞에 있는?”

     그는 그렇다 답했다.

     나는 단연 그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성함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이시겠구먼. 나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랍니다. 우린 1969년인 지금 캠브리지의 도시에 있고요.”

     “그렇지 않은데요.” -- 그는 조금 멀리서 내 본연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시 뒤 그가 주장하길,

     “저는 여기 제네바에 있고, 론 강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우린 서로 닮았는데, 하지만 그쪽은 훨씬 연세가 있으시고 머리도 희끗희끗하네요.”

     나는 답했다.

     “내가 자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가 있네. 모르는 사람이면 알 수 없을 것들을 말해 보겠네. 집에는 은으로 된 마테 찻잔이 있는데, 다리가 뱀 모양인 그것은 증조할아버지께서 페루에서 갖고 오셨지. 그리고 은으로 된 대야도 하나 찬장에 걸려 있어. 자네 방 장농에는 책이 두 줄로 서 있지. 에칭 판화에다가 각 장 끝에 작은 글씨로 주석이 달린 라네의 ‘천일야화’가 세 권 있고, 키체라트의 라틴어 사전, 라틴어와 고르돈의 번역이 함께 있는 타키투스의 ‘게르만족의 기원과 현황’, 가르니에 출판사에서 나온 ‘돈 키호테’, 저자 사인이 든 리베라 인다르테의 ‘피의 목록’, 칼라일의 ‘사르투르 레사르투스’, 그리고 아미엘 전기가 한 권 있지. 책들 뒤로는 가철 제본 상태로 발칸 반도의 성풍습에 관한 책이 한 권 있고 말이야. 아직도 뒤부르 광장의 어떤 건물 2층에서 본 해 질 무렵의 풍경은 잊혀지지가 않아.”

     “뒤푸르겠지요.” -- 그가 고쳐 주었다.

     “그래, 뒤푸르지. 이거면 됐나?”

     그가 답했다. “아니죠, 말씀하신 것들은 아무런 증거도 되지 못합니다. 제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라면 제가 아는 걸 알시는 것도 당연하지요. 열거하신 것들도 모두 헛된 일이고요.”

     일리 있는 반박이었다. 나는 답했다.

     “지금 아침과 우리의 만남이 꿈이라면 우리 둘은 저마다 이 꿈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할 테지. 우린 꿈을 그만 꾸거나 계속 꿀 거야. 하지만 분명 그동안에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테지. 우리가 이 세계를 인정함으로써 그 세계가 일어났고 또 우리가 두 눈으로 보고 숨 쉬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이 꿈이 계속되기라도 하면요?” -- 그가 걱정스레 말했다.

     나는 그런 그를 진정시키고 나 또한 진정하고자 부러 있지도 않은 침착함을 연기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내 꿈이 계속된지도 이미 70년이네. 생각해 본다면 결국에 가서는 그 누구도 저 자신과 조우한 적은 없어. 그런데 그 일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거야, 우리가 둘일 따름이지만. 자네는 내 과거가 어땠는지, 그러니까 자네를 기다리고 있는 장래에 대해 알고 싶지는 않나?”

     그는 말 없이 수긍했다. 나는 조금은 넋 나간 사람처럼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차르카스와 마이푸 거리의, 그러니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집에서 건강히 잘 계시는데, 아버지는 삼십 년 쯤 전에 돌아가셨지. 심장병으로 말이야. 반신불수에 걸리셨었는데, 왼쪽 손이 오른 쪽 손위로 올라간 게 마치 어린 아이의 손이 거인의 손 위로 놓인 것만 같았어. 죽는데 안달이 나서 돌아가셨지만, 그렇다고 불평 따위는 없었어. 우리 할머니도 같은 집에서 작고하셨지. 임종 며칠 전에 우리 모두를 부르셔서는 얘기하더군, “내가 아주 늙어서 죽는 것도 참 더딘 거 같아. 이런 평범하고 통상적인 일로 소란스러워 하는 사람은 없길 바란다.” 자네 누이인 노라는 결혼 해서 애가 둘이야. 그건 그렇고 지금 집 말이야, 다들 잘들 있나?”

     “잘들 지냅니다. 아버지는 항상 신앙에 어긋나는 농담을 하시지요. 어제 저녁에 말씀하시기를 예수는 자기 죄를 인정 않는 가우초들과 같았어가지고, 그래서 우화로 설교로 했다고 하더군요.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게 말했다.

     “그쪽은 어떠신가요?”

     “쓰게 될 책이 몇 권인지는 모르지만 그 수가 결코 적지는 않다네. 자네는 시를 써서 남들과는 나누지 못할 즐거움을 얻게 될 테고 환상적인 성격의 소설들을 쓸 거야. 아버지나 우리 집안의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강의를 하게 될 테고.”

     나는 그가 내게 책의 성공이나 실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아 좋았다. 나는 짐짓 목소리 바꿔서 말을 이었다.

     “역사에 대해서는 말이지... 또 전쟁이 발발했는데, 거의 마찬가지의 인물들 사이의 일이었어. 프랑스는 얼마 안 있어 항복을 선언했고, 영국과 미국은 히틀러라고 하는 독일 독재자에 맞서 워털루 전투의 순환으로부터 해방되었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1946년 경에 또 다른 로자스Rosas//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1793-1877)은 1829년부터 1852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독재정치를 한 인물인데, 앞서 세계 2차대전을 워털루 전투에 빗댄 것처럼 여기에서는 아르헨티나 현대사에서 가장 큰 논쟁거리인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을 가리키고 있다.// 나타났는데, 정말이지 우리네 선조하고 아주 닮은 자였어. 55년에는 이전에 엔트레 리오주 덕분이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코르도바주 덕에 살아날 수 있었네. 오늘날에는 상황이 좋지 않게 변하고 있어. 러시아는 세계를 지배하려 들고 있고, 민주주의라는 미신에 얽매인 미국은 제국이 될 각오가 서 있지 못하지. 날마다 우리 나라는 점점 더 변방이 되어만 가고 있어. 더욱 변방에 더욱 독선적인 것이 마치 두 눈을 감고 있는 것만 같아. 이제 라틴어를 대신해서 구아라니어를 가르친다 해도 놀라지 않을 정도라니까.”

나는 그가 내게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불가능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이 보란듯이 그를 겁에 질리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의 부모도 아니지만은, 이 가엾은 청년이 내 혈육보다도 가까운 느낌이 들며 사랑으로 복받쳤다. 그가 두 손으로 한 권의 책을 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책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제가 볼 때에는 ‘악령’이 어울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사로잡힌 자들’//이 소설은 번역에서 악령인지 악령에 들린 사람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다.//입니다.” 그는 허세 따위는 부리지 않으며 답했다.

     “기억이 희미한데, 어떤 소설이지?”

     나는 이 말을 하자마자, 내 질문이 그에게 신성모독이었음을 느꼈다.

     그는 선언하듯이 말했다.

     “그는 러시아의 거장으로 슬라브 영혼의 미궁 속으로 그 누구보다도 싶이 들어간 작가입니다.”

     내게는 이렇게 말을 주고받음으로서 그가 마음이 진정되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가 거장의 다른 어떤 책들을 달렸는지를 물었다.

     그는 두 세 권의 책들을 열거했는데 개중에 ‘분신’이 있었다.



(...)


Posted by Sacha